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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시봉>, 그 시절 우리는 사랑을 노래했다MOVIE 2020. 7. 4. 16:20
우연히 제주도를 놀러 가서 밤에 스마트폰 넷플릭스를 통해 쎄시봉을 보게 되었다. 평소 쎄시봉이라는 음악감상실이 있었고, 조영남/윤형주/송창식 등이 여기서 유명했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의 배경지식은 없었고 관련된 노래들도 전혀 몰랐기 때문에 백지상태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쎄시봉은 '아주 멋져', '매우 훌륭해' 정도의 뜻의 불어로 C'est si bon 이라고 쓴다고 한다. 쎄시봉이라는 실존했던 음악감상실을 배경으로 한 로맨스 이야기이며 오근태(정우 분) / 민자영(한효주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존인물이다. 아이러니한 건 사실 이 가상의 인물 2명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아마도 실존인물로는 드라마틱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기 어려워 가상의 인물을 등장시킨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된다. (조영남은 극 중에서도 바람기가 엄청난 사람으로 나오는데, 실제 조영남이 이를 보고 아무 말 없었던 게 신기하다)
영화를 보기 전 몰랐던 '트윈 폴리오' 라는 그룹에 사실은 오근태라는 기존 멤버가 있었다는 소문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관찰자는 이장희(진구 분)이며 이 이장희를 통해 남녀 주인공이 만나게 된다. 오근태와 민자영은 음악이라는 공통의 관심사 그리고 쎄시봉을 통해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지만, 한효주의 성공에 대한 열망으로 민자영은 오근태를 떠나게 되고 오근태는 이에 충격을 받아 음악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입대한다. 동시에 쎄시봉 음악인들에 대한 대마초 이슈가 터지게 되고, 오근태가 친구들 이름을 넘겼다는 소문과 동시에 쎄시봉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20년 후, 미국에서 라디오 진행을 하던 이장희를 찾아간 민자영(김희애 분)은 오근태에 대해 묻지만, 이장희도 오근태에 관한 건 모른다 답한다. 이후 우연히 미국 출장을 온 오근태와 이장희가 만나게 되며, 오근태가 술김에 이장희의 라디오에 출연하겠다고 답해 라디오에 출연해 노래를 부르게 된다. 방송 이후, 오근태는 자신이 대마초 수사 때 쎄시봉 친구들 이름을 넘긴 게 맞다며, 자신은 친구가 아니라고 차갑게 말하며 떠난다. 민자영은 이 라디오를 듣고 오근태가 미국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후 둘은 우연히 공항에서 만나 안부를 묻는다. 절절한 재회도 잠시, 둘은 비행기 시간 때문에 떠나게 되지만. 이장희는 장고 끝에 오근태가 당시 신인 여배우로 꽃을 피우던 민자영을 수사선상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쎄시봉 친구들의 이름을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를 민자영에게 전한다. 오근태가 비행기를 타기 직전, 민자영을 이 사실을 알고 오근태에게 달려가 왜 그랬냐고 묻지만, 오근태는 그런 적이 없다며 일축하고 비행기를 타러 떠난다. 하지만 얼마 못가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는다.
다시 20년 후, 쎄시봉 콘서트에서 만난 오근태와 민자영을 아련한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스토리는 간단하고 가볍다. 둘은 사랑했지만 원하는 것이 달랐고 헤어지게 되는 흔한 청춘 영화이다. 아마도 쎄시봉에 대한 음악적인 고증이나 완벽함을 원했던 관객이라면 실망했을 것 같다. 초반 부 쎄시봉 히트곡이나 노래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음악적인 내용 보다는 로맨스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긴 하나, 나처럼 해당 60~70년대 포크송을 잘 몰랐다면 실망감 없이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다(조개껍질 묶어~ 이 노래도 원래 몰랐다)
배우들의 연기를 매우 훌륭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강하늘의 노래실력에 한번 놀랐고 실제 윤형주의 미성을 어느정도 구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창식을 연기한 조복래 씨는 정말 송창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는 실존인물에 미치지 못하지만 표정이나 그런 행동이 비슷한 걸로 보아 연구를 굉장히 많이 한 것 같다. 영화에서 정확히 개그 포지션 담당이다. 정우는 70년대 순수하고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그의 모습을 그 시절 청춘을 대변하고 있다. 특히 민자영이 결혼하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녀의 집 앞에서 자신도 사실은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 거짓말하는 장면에서 그의 연기가 빛을 발한다.
영화에 대해 조금 안타까운 점은 아래와 같다.
1. 쎄시봉이 배경이지만 음악 얘기보다는 로맨스에 치중되었다는 점
2. 과거 쎼시봉 배경과 김윤석과 김희애가 나오는 90년대 장면이 너무 이질적이라는 점(다른 영화를 붙여놓은 것 같다)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아래와 같다.
1. '웨딩케이크'라는 곡이 사실은 민자영이 결혼 하기 전날 쓴 가사라는 설정을 대입해 '내일이면 나는 원치 않는 결혼을 하네'라는 가사가 만들어진다.
2. 민자영은 사실 조영남의 전 부인인 윤여정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로, 실제로도 쎄시봉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많지만..
3. 오근태는 전혀 실존인물이 아니고 트윈폴리오는 윤형주/송창식으로 이루어진 멤버고 영화에서와 달리 둘은 실제로 사이가 좋다고 한다.
4. 영화 OST로 배우들이 극중 노래들을 부른 앨범이 발매되었다. 김희애가 부른 웨딩케이크가 좋다.
정리해보면,
쎄시봉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면 영화를 즐길 수 있지만,
쎄시봉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기대를 본다면 조금은 실망하게 될 것 같다.
+ 배우들이 부른 OST / LP 커버도 그 시절답게 바꾼 것은 센스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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